앤잇굿? Since 2007

adman.egloos.com

포토로그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깐죽 비공식업무일지


영화가 엎어지고 나면 남는 건 깐죽 뿐이다.


남들이 깐죽거리면 기분이 나쁘길래 뭔가 확실히 결정되기 전에는 아무런 말도 안하는 편이지만 아무런 말도 안하려고 해도 아무런 말도 안하고 살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요즘 뭐하냐고 물어오면 몇 마디를 하게 된다. 몇 마디만 해도 대충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고 일이 잘 풀릴 때야 아무런 문제가 안되지만 일이 잘 안되고 나면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농담부터 시작해서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뭐라고 했냐, 취향이 마이너라서 그렇다는 등의 깐죽을 당하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으려고 해도 막상 술 몇잔 마신 상태에서 깐죽 십연속 콤보라도 당하고 나면 기분이 안 나쁠 수가 없다. 나도 깐죽거리는 상대방의 약점을 집어내 깐죽대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면 성질 급한 놈이 먼저 상대방 멱살잡고 엎치락 뒤치락 땅바닥에서 구르기도 한다.


영화만 그런 게 아니고 회사가 힘들어져도 깐죽을 당한다. 회사가 잘 나갈 때는 아무런 말도 안하다가 막상 회사가 힘들어지면 회사 이름을 패러디한 농담부터 시작해서 인맥이 없으니 그렇지, 대표가 재벌 2세냐, 회장님 친척이냐, 무슨 베짱이냐 등등...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렵게 날개를 등짝에 붙여 한번 날아보려다 본의든 타의든 날개가 꺽여 땅바닥에 떨어진 사람에게 깐죽거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실패라는 결과 앞에서는 꿈을 꾼 사람들만 바보가 되고 깐죽을 당하게 된다.


아예 처음부터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본전이 목표라면 성취감은 없겠지만 깐죽도 안 당한다. 사실 포카도 그렇지만 어떤 일이든 본전도 힘들다.


개인적으로 수년간 차기작을 기다려온 감독님이 있다. 정말 좋은 감독님인데 다행히 그 힘들다는 투자도 어렵사리 받았고 정말 오랜 시간의 침묵을 깨고 새 영화를 찍었다. 나쁘지 않았다. 시나리오보다 잘 나왔다. 20대 중 초반 여성 관객들에게 기쁨주고 사랑 받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있었다. 여성들이 좋아라하는 스타 배우가 출연했고 A급 스텝들이 총출동했으며 홍보도 주어진 예산 이상으로 잘 됐다. 대박까진 아니더라도 본전 이상은 할 줄 알았다. 개봉도 와이드 릴리즈였다.


관객은 안 들었다. 2주를 못 넘기고 극장에서 철수했다. 감독님에게 영화 잘 봤다고 하자 사람좋은 미소가 돌아왔다. 그 날 이후 감독님을 만난 적이 없는데 어느날 우연히 논현동 밤거리 영동시장 뒷골목을 홀로 배회하는 초췌한 모습의 감독님을 목격했다.


나도 요즘은 말이 좋아 재택근무지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수는 없고 막상 집에서 나와도 딱히 갈 만한 데도 없다. 노는 동안 만날 사람들도 다 만났다. 더 이상 아무런 껀수 없이 사람들을 만나봤자 할 얘기도 없다. 혼자서 그냥 정처 없이 이리저리 걸어다니다 우연히 목격한 감독님과 술 한잔 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보내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100퍼센트 감독님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본전 생각하면 재작년 작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게 옳았다. 옳았나?




덧글

  • 심리 2007/11/28 04:08 # 답글

    참 슬프네요. T_T 도전 의식이 중요한 건데, 도전과 실패가 없다면 성공도 없는 건데요.
    실패한 사람을 위로는 못해줄 망정 깐죽거리다니...... 사람들 인심이 은근히 고약하군요. 그건 예의가 아닌데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군요.

    도전하는 사람들을 격려는 못해줄 망정, 단점 잡아 끌어내리려는 사람도 적지 않은 요즘 세상입니다. 한 작품 한 작품의 흥행에 가슴을 졸여야 하는 영화인의 심정...... 평범한 관객들은 잘 모를 거예요 아마. 이렇게 말씀 들으니 간접적이지만 조금은 실감이 드네요. 부디 도전하는 사람들이 격려 받고, 최소한 깐죽거림 비아냥은 듣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네요. 아무리 동업자가 경쟁자라지만, 같은 처지에 위로는 못해줄 망정 남의 실패를 깐죽거리다니오....... 흑;;;;;
  • 알렉스 2007/11/28 18:35 # 삭제 답글

    깐죽... 대게 엄청 상대방을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속을 뒤집어 놓죠.
  • 맘짱 2007/11/28 21:52 # 삭제 답글

    혹시...그 영화 [어깨너머의 연인] 만드신 감독님이 아닐런지요...내 감이 틀리진 않았음 좋겠는데...ㅠㅠ
  • 이런젠장 2007/11/28 22:40 # 삭제 답글

    망한 영화가 너무 많아서 누군지 감도 안오네...
  • 마음씨 2007/11/29 00:28 # 답글

    어깨너머 연인 우리회사에서 한장면 찍었는데.. OTL
  • 라엘 2007/11/29 10:47 # 답글

    한 해 찍는 영화 중 BEP 넘기는 게 10여편 남짓일 걸요. 훗훗. 그 나머지 모든 영화는, 또 하나의 회사를 도산시키는 거죠. 이 바닥이 이래요. 크앙.
댓글 입력 영역



newadss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