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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영업 스타일 비공식업무일지


보험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다니는 보험회사에서 회사가 손해를 보면서 팔고 있는 착한 보험 상품이 나왔으니 친한 친구인 나에게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예전에 친구가 보험 세일즈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언젠가는 나한테도 보험을 팔려고 하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친구는 전화로 뭐라 뭐라 장황하게 설명을 하긴 했는데 무슨 소린지 이해가 잘 안되고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기본적으로 보험 회사가 손해를 보면서 팔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몽땅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자신이 팔려고 하는 보험상품에 대한 설명을 마친 친구가 어쩔거냐고 묻길래 나는 요즘 한국 영화가 위기라서 내가 다니는 영화사도 망해가고 있고 당연히 나도 보험에 가입할 여유가 없다고 내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보험 가입 거부 의사를 밝혔다.


보험 가입 제안 거부 사유를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는 한국 영화보다 보험 세일즈 업계가 더 어려우니 좀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극장에 가보면 알겠지만 요즘엔 개봉하는 한국 영화가 별로 없을 정도로 한국 영화계가 사상 최악의 불황이라고 비교할 걸 하라고 했더니 자기는 보험 세일즈를 시작한 후로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극장 구경은 엄두조차 못내고 있으니 자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영화사가 망해가건 말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니까 그 정도 어려움은 감수해야 되고 간간히 이쁜 연예인들도 구경할 수 있는 영화사 직원이니까 보험 세일즈보다 어렵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보험 세일즈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친구가 나를 상대로 보여준 영업 스타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다른 보험업계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친구의 영업 실적만큼은 확실히 안 좋을 것 같다. 아무리 친구사이라지만 이처럼 고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 따지는 듯한 태도로 영업을 하면 보험에 가입할 생각이 있던 사람의 마음조차 돌아설 것 같다.


친구는 한국영화와 보험업 중 어느 업종이 더 어려운지 말싸움을 하다가 기분이 나빠졌는지 언제 소주 한잔 하자는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무래도 제대로 삐진 것 같은데 친구의 삐짐을 풀어주기 위해 보험에 가입할 생각은 전혀 없다.


친구의 어처구니 없는 보험 영업 스타일을 감상하고 나니 나 자신의 과거 영업 스타일을 반성하게 됐다. 나도 왜 이렇게 좋은 기획을 몰라보냐며 내 기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따지듯이 대들었던 적이 있다. 강하게 나가는 건 좋은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될 일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해 주면서 일을 진행한다고 안 될 일이 될까?


예전에 내가 이건 만들기만 하면 대박이니까 제발 좀 만들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아이템과 비슷한 아이템이 다른 제작사에서 먼저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 배 아프게도 대박을 터뜨린 적이 있고 그 반대로 내가 제안한 아이템과 비슷한 아이템이 다른 제작사에서 먼저 만들어졌는데 다행스럽게 쪽박을 찬 적이 있다. 내가 망해가는 영화사들에 다니며 영화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던 모든 기획 아이템들은 결국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어차피 한 편도 안 만들어질 줄 알았으면 뭣 좀 해보겠다고 나와 생각이 다른 직원들을 설득해보려다가 언성 높여 싸우지 말고 그냥 사이좋게 지내는 데에나 전념할 걸 그랬다.


괜히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내 친구가 나에게 그랬듯 핏대 높여 따지고 목 아프게 담배 연기 들이마시며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다해도 어차피 안 될 일은 안 되는 것이다.




덧글

  • 라엘 2008/03/17 01:06 # 답글

    아아아 영화일 하다가, 방송일 하다가, FC로 전향하신 분들 제 주변에도 있지요. 보험 막 들어달라고, 우리 사이에... 하시는데, 참 나도 어려운데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전화도 못 끊고. 한번 보자고 하시는데, 뵙기도 그렇고. ㅠㅅㅠ 심지어 니가 그렇게 힘들면 너도 FC 해라, 하시는데. 괴롭지요.
  • 술과고기 2008/03/17 01:51 # 답글

    아아 정말, 저도 어떤 선배 한 명이 그러는 통에 정말 그 사람한테 실망한 적이 있었죠...
  • 비타민 2008/03/17 02:00 # 답글

    아... 멋진 깨달음이네요....
  • 동사서독 2008/03/17 09:45 # 답글

    FC는 그래도 양반... 피라미드가 아직 남았다는
  • 노가다인생 2008/03/17 21:42 # 삭제 답글

    한국영화만 망해가는게 아닙니다. 한국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 소병호 2008/03/18 15:41 # 삭제 답글

    영화쪽 일을 하는 저도 가슴이 무척 아프군요~~~2년전부터 예고 되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분명한건 앞으로 대책입니다 지금이라도 관계자들이 시행착오를 격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화시장은
    해볼만 합니다 아니 꼭 전성기를 누릴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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