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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악몽 비공식업무일지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위해 메이저 영화사의 메인 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정확히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아주 아주 중요한 계약이었다. 그 계약서에 도장만 찍고 나면 앞으로의 나의 영화 인생은 과거와는 달리 확 달라질 게 분명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그 동안 이 바닥에서 뭔가 해 보려고 발버둥치다 당한 어처구니없는 굴욕의 순간들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들러리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나도 이젠 제법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메이저 영화사의 여직원이 타다 준 커피는 믹스 커피도 아닌 에스프레소였다. 손님 접대를 위해 사무실에 백만원도 넘는다는 에스프레소 기계까지 갖다 놓은 걸 보니 역시 메이저 영화사는 다르구나 싶었다.


잠시 후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한 손에는 계약서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눈 후 이런 저런 덕담들을 나누었다.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는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나에게 계약서를 건네며 여기 여기에다 도장을 찍으면 된다고 했고 나는 황급히 주머니 속에서 도장을 꺼내들었다. 내가 계약서를 받자마자 허둥지둥 도장을 찍으려고 서두르자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는 계약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 찍는 거 아니라고 먼저 계약서를 읽어보라고 했는데 나는 믿으니까 괜찮다며 다시 도장을 찍으려고 했다. 그 순간 그 동안 말로만 들어오던 성취감이라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런 성취감은 꿈 속에서조차 처음이었던 것 같다.


바로 그 때였다. 회의실 문이 덜커덩 열리더니 내 앞에 앉아 있는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보다는 조금 덜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에게 황급히 다가가 귀 속에다 뭐라 뭐라 속삭이기 시작했다.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려다 말고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도장을 찍으려면 지금도 찍을 수는 있었지만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랑 둘이서만 있을 때 도장을 찍고 싶었다. 잠시 후 덜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가 회의실에서 나가자마자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는 사람 좋은 미소를 싹 거두고는 쓴 웃음을 지으며 내 손에 들려 있던 계약서를 슬그머니 낚아채갔다.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는 원망스런 눈빛으로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이 계약은 없었던 일로 하자며 계약서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냐고 물어보았는데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회의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황급히 회의실 문 앞을 가로 막으며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냐고 따져물었다.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노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기가 예전에 본인의 집을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어떤 영화 한 편을 어렵게 제작하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시켜 힘들게 개봉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떤 싸가지없는 블로거 하나가 그 영화가 망할 것 같다며 개봉도 하기 전에 초를 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영화는 그 싸가지없는 블로거의 예상대로 망해버렸는데 자기는 그 영화가 망한 게 다 그 싸가지 없는 블로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이긴 한데 블로그 하나 때문에 영화가 망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 후 그런데 그 영화가 망한 거랑 지금 이 계약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어보았다.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는 그 때 그 싸가지 없는 블로거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방금 전에야 알게 됐다며 나와는 같이 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블로그라고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랑 네이버 블로그 밖에 없고 둘 다 스크랩이랑 펌 위주라서 흥행예상 따윈 올리지도 않는다며 아까 그 덜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의 말은 다 헛소문이라고 버럭 버럭 우겼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는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 들은 얘기라서 헛소문일 리가 없다며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회의실에서 나가버렸다.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가 메인 회의실에서 나간 후 나는 이럴 줄 알았으면 블로그 따윈 시작하지도 말았어야 했다며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슬그머니 문이 열리더니 아까 에스프레소를 갖다 준 여직원이 회의실로 들어와 내가 마시다 남은 에스프레소 잔을 챙겨 들었다. 빨리 나가달란 얘기구나 싶어서 서럽게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잔을 챙겨 든 여직원은 그런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불쌍해서 저러는구나 싶어 행여나 시선이 마주치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애써 여직원의 시선을 피하며 가방을 챙겨들었다. 뭐 두고 가는 거 없나 싶어 소지품을 다 챙겼는지 확인하고 회의실 문 쪽으로 걸어가려는 순간 여직원은 ‘저기요~’ 라면서 나를 불러 세웠다. 설마 에스프레소 잔 설거지까지 시키려는 건가 걱정하며 ‘왜요?’ 라고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여직원을 올려다보았다.


아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제법 미모의 여직원이었다. 제법 미모의 여직원은 나를 보고 환하게 미소지으며 ‘블로그 잘 보고 있어요. 힘 내시라구요!’ 라고 했다. 나는 제법 미모의 여직원의 미소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원한다면 전화 번호를 알려줄 수도 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잠에서 깨 버렸다.


음. 악몽은 아닌 것 같다.




덧글

  • 박민성 2008/08/19 06:57 # 답글

    꿈★은 이루어진다
  • 충격 2008/08/19 07:16 # 답글

    초반에는 도장 찍고 외인부대로 끌려가는 AREA88식 전개를 연상하였으나, 당연하게도 그런 전개는 아니군요. 음.
  • 케야르캐쳐 2008/08/19 09:09 # 답글

    좋은 꿈이네요.
  • joyce 2008/08/19 09:53 # 답글

    네 저도 그 말 하려고 했어요.
    'Not a bad dream!'
  • 땅콩샌드 2008/08/19 12:01 # 삭제 답글

    꿈★은 이루어진다
  • 타누키 2008/08/19 12:04 # 답글

    이거 또 연재 들어가시는건...
  • 라랄라 2008/08/19 12:10 # 답글

    그 여직원이 꼰지른거 아니에요?
  • 빛날輝 2008/08/19 12:11 # 답글

    발나도의 뒤를 이어 이번에도 화이팅;
  • ... 2008/08/19 13:49 # 삭제 답글

    어쩐지 의미심장하네요. 아우 무섭습니다;
  • 뇌를씻어내자 2008/08/19 14:38 # 답글

    어쨌든, 굳이 따지자면 해피엔딩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 뭐 이런 거.
  • ㅋㅋ원조 2008/08/19 15:09 # 삭제 답글

    이게 웬 해피엔딩? 여비서랑 응응이라도 했으면 모를까....
  • 2008/08/19 15:48 # 삭제 답글

    아가시 발쿰치에 뱀이..
    아시발..
  • 예영 2008/08/19 18:38 # 답글

    결론은 해피엔딩? ^_~+

    환타지 소설계에 종사하시는 어떤 분 말씀이, 자신은 블로그에 다른 소설가를 비난하는 글은 올리지 않는다는군요. 후환이 두렵다나요?
    비판이든 찬사든, 나중에 책임질 수만 있다면야~
  • 돈내는넘 2008/08/19 18:59 # 삭제 답글

    꿈해몽을 해보자면 앤인굿님은 영화 한편 제대로 만들어서 극장에 흥행 영화를 걸기보다는 흥행까지 좌우할 정도의 영향력있는

    블로거 앤잇굿이 되고 싶으신 거군요...그리고 영향력있는 블로거 앤잇굿에 힘입어 이쁜 처자들이 달려들기를 원하는거군요....ㅋㅋㅋ

  • IEATTA 2008/08/19 20:17 # 답글

    꿈★은 이루어진다
  • 카우프만 2008/08/19 23:26 # 답글

    진짜 요즘 조심해야겠어요
    이름만 치면 인터넷에서 뭔짓을했는지 다나오니
  • 검은머리요다 2008/08/19 23:48 # 답글

    음... 진짜 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걱정이 되는데요..꿈이면 그정도로 블로그가 영향력이 있다는걸 인지하고 있는 거니 상관없는데.. 실제면.. 영화판에 그렇게 쪼잔한 아저씨가 있다면.. 그렇게 결정을 내린다면.. 속상한데요.
  • 내가영화인이던가? 2008/08/20 00:47 # 삭제 답글

    이건 실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리얼하네요. 실화가 아니라도 언젠간 이런 일을 겪으실 것 같아요. 악몽에 한 표ㅋ
  • 마르고트 2008/08/20 09:29 # 삭제 답글

    몇 번 왔다갔다 했는데 덧글은 처음남기네요;
    그 여직원의 말처럼(?) 저도 블로그 잘 보고있습니다-
    블로그의 영향력이 생생하게 다가오네요. 블로거가 영화에 대해 올릴수도 있는거지 그거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이쪽에서 사양이야"라고 저는 말해주고싶네요.
  • 정시퇴근 2008/08/20 10:33 # 답글

    ㅎㅎㅎㅎ 마지막에..살짝 반전

    흐흐흐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_^
  • 울비 2008/08/20 13:42 # 답글

    1, 소식통은 여직원.
    2. 혹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께서 확인을 지시하셨다.

    이 두 가지에 겁니다.
  • 물고기 2008/08/22 05:24 # 답글

    좋은 꿈 꾸셨네요.ㅋㅋ
  • ... 2008/08/23 17:54 # 삭제 답글

    여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찌르고 다른 직원이 사장에게 찌른거 아닐까요. ㅎㅎㅎㅎ
  • bikbloger 2008/08/24 22:59 # 답글

    알고보니 소식통은 여직원, 우울한 마음으로 그곳을 나와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초 메이저 영화사를 설립한 후, 중요해보이는 아저씨가 있는 영화사를 인수한다. 물론 그 미모의 여직원을 여친으로 만들고, 중요해 보이는 아저씨는 과거의 정리를 생각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자리를 하나 준다는 해피엔딩...
  • 라엘 2008/08/26 21:10 # 답글

    저도 울비님의 의견에 한표!
  • 천군 2008/09/04 21:40 # 답글

    말세 대재앙에 피란처 선경을 찾아라!


    http://www.paikmagongja.org/k_index.html

    홈의 글 바로가기에 있습니다.

    http://www.sins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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