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밥집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여느 때처럼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는데 평상시와는 다른 뭔가가 눈에 띄었다. 방금 전 물을 따라 마셨던 하얀색 물컵 끄트머리에 조그만 핑크색 얼룩이 묻어있는 것이었다. 얼룩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컵을 가까이 가져와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주 조그만 얼룩이었지만 사람 입술 특유의 미세한 주름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핑크색 얼룩의 정체는 립스틱 자국 같았다.
당황스러웠다. 단골 손님들에게만 제공되는 특별 서비스일리는 없고 아마도 설거지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인 듯 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장님한테 컵에 립스틱이 묻어있다고 알려주려다가 다른 손님들이 들으면 이 식당은 설거지도 제대로 안 하는 불결한 식당이라는 소문이 날까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게다가 서빙하는 분들과도 친분이 돈독한 편인데 괜한 짓을 했다가 밉상으로 찍힐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얘기를 해 줘야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 같아 말을 해 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한참을 고민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밥을 다 먹어 버려서 대충 계산하고 나와 버렸다.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와 물컵을 통해 간접 키스를 한 셈인데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립스틱 좀 먹는다고 배탈이 날 리도 없고 과연 누구의 립스틱 자국일지 상상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물맛도 괜찮은 편이었던 것 같다. 립스틱 자국의 주인이 누군지 알 도리는 없다만 이왕이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점심시간마다 마주치던 어느 이름모를 회사 여직원 그룹 중의 한 명이 립스틱 자국의 주인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덧글
한 남자가 평생동안 두 개 분량의 립스틱을 '섭취' 한다는 통계결과가 있었던게 문득 생각났습니다.
간접키스를 하셨다 함은 다른 데로 마셔도 되는데 굳이 거기로 드셨다는 얘기가...;;;
그래도 이름모를 그 여직원이었기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