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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_1회 엔딩크레딧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준호는 알람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귀를 막고 있었다. 어제 밤에 친구들과 너무 심하게 달려서인지 컨디션이 영 별로였다. 귀를 막건 말건 알람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그래도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알람을 꺼버리고 계속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문득 자신이 얼마 전부터 영화사 기획팀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차마 그러지는 못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정시에 꼬박꼬박 출근했으니 지각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지각을 하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계속 지각을 밥 먹듯 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에 갈등하고 있었다. 지각을 하고 싫은 소리를 듣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왠지 한번이라도 지각을 했다간 스스로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절대로 빈틈을 보여주기 싫은 사람이 한 명 있기도 했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픈 가운데서도 이를 악물고 집에서 나와보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잠깐 편의점에 들러 우산을 사려고 했었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해서 대충 버티기로 했다. 그러나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어느새 폭우로 변해있었다. 준호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무실까지 전력 질주했다. 차라리 조심 조심 빌딩 처마 밑으로 걸어갔으면 덜 젖었겠지만 무식하게 달리면서 아스팔트 군데 군데 고인 물웅덩이를 몇 번 밟는 바람에 양말까지 완전히 젖어버렸다.


 찝찝한 기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와보니 아직까지 불도 켜져 있지 않았다. 준호가 1등이었다. 비록 1등으로 출근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준호는 사무실 안에서도 가장 구석에 위치해있는 자신의 책상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뒤쪽에는 벽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업무 시간에 무슨 짓을 하더라도 들킬 염려가 없었다. 비록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쇼핑 따위를 하는 건 아니지만 멍한 얼굴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거나 업무와는 상관없는 메신저를 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뒤에 누군가 있었다면 감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을 것이다.


 젖은 양말을 벗어 컴퓨터 본체 위에 올려놓고 평소 자주 가는 커뮤니티 등을 돌아다니고 있노라니 멀리서부터 엘리베이터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들어보니 사무실 문이 열리며 준호의 기획팀 직속 상사 한지선 팀장이 들어오고 있었다. 주도면밀하고 준비성이 투철한 성격답게 미리 우산을 준비했는지 머리카락 한 올까지 비에 젖지 않고 뽀송뽀송했다. 준호는 지선의 등장에 잔뜩 긴장하며 컴퓨터 본체 위에 올려놓았던 양말을 얼른 책상 밑으로 치웠다. 아직 마르지 않은 양말이라 신기에는 조금 꺼림직했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회의 준비는 다 됐죠?


 준호는 순간 아차! 싶었다. 오늘 시나리오 회의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있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회의 시작까지는 사십분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 네. 그럼요.”


 준호는 지선의 말을 듣고 나서야 허둥지둥 인터넷 창을 닫고 회의 자료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제 시간에 회의 준비를 끝낼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복사기가 말썽을 부리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었지만 아무래도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 수대로 자료를 출력하고 복사까지 하려면 사십분으로는 조금 부족할 것 같았다. 지선은 자신의 말을 듣고 나서야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하는 준호를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오전에 회의가 있으면 전날에 미리 미리 준비해둬야 되는 거 아니에요? 깜빡했던거 맞죠?”

 “아. 그게 아니구요. 네;”


 준호는 지선의 추궁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묵묵히 복사에만 열중했다. 복사기가 오래되서 그런지 자주 말썽을 피웠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열 몇장쯤 복사하고 나니 언제나 그랬듯이 종이 씹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회의 시작 전까지 준비를 다 끝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소리와 함께 직원들이 출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들끼리 인사를 하고 비에 젖은 우산을 말리느라 분주한 가운데서도 준호는 복사기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깐 비켜봐.”


 뒤를 돌아보니 복사기 수리에 일가견이 있는 준호의 입사동기 민정이가 서 있었다. 준호가 자리를 비켜주자마자 민정이는 익숙한 솜씨로 복사기 뚜껑을 열었고 잠시 후엔 다시 정상적으로 복사가 시작되었다. 민정이는 회사 생활 5년 차답게 복사기를 다루는 데에 능숙했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말썽꾸러기 복사기라도 민정이가 손을 대면 금방 멀쩡해졌다. 다행히 민정의 도움으로 회의 시작 전까지는 복사를 끝낼 수는 있을 것 같았는데 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자료에서 오타를 발견한 것이다. 그동안 잦은 오타 때문에 지선에게 무수히 혼났던 준호는 오타를 보자마자 기절해버릴 것만 같았다.

2009/04/29   OOO씨 팬 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로맨스 소설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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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잇굿? : 엔딩크레딧_2회 2009-05-20 01:04:51 #

    ...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회의실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아있었다. 어쩐지 이번에 고쳐온 시나리오도 한지선 팀장의 마음에 들지 못한 것 같았다. 2009/05/18 엔딩크레딧_1회 [10] ... more

덧글

  • BL 2009/05/18 02:51 # 삭제 답글

    응원합니다.
  • 오리지날U 2009/05/18 09:08 # 답글

    오오-
  • 하양군 2009/05/18 10:18 # 답글

    흥미진진합니당'ㅅ'
  • 류제 2009/05/18 11:07 # 삭제 답글

    혜선이는 어디있나요!
    아직 여주는 등장하지 않은 것인가!
  • 흠. 2009/05/18 15:54 # 삭제 답글

    그러니까 준호랑 지선이랑 결혼하는거죠? 민정이는 중간에서 삼각갈등을 빚을테고...
  • 구라왕국 2009/05/18 20:36 # 답글

    완결되면 한꺼번에 볼래요 ㅋㅋㅋ
  • 2009/05/18 21:03 # 답글

    와와! 신나는군요!! 기대만발입니다!!! ^ㅁ^
  • 애드맨중독 2009/05/19 09:05 # 삭제 답글

    기대 됩니다. 흥미진진한 출발이네요~~
  • 키세츠 2009/05/19 09:42 # 답글

    호오라~! 기대 만빵!!!

    근데... 민정이와 입사동기라고 했는데, 민정이는 회사 생활 5년차라고 그러고,
    주인공은 얼마전부터 회사 다닌 것이라고 하면....? 으응?
  • 오리지날U 2009/05/19 12:07 #

    말 그대로 '회사생활 5년차'인 거겠죠 뭐. 입사는 준호랑 같이 한 거고.
  • 두부 2009/05/20 15:05 # 답글

    “아. 그게 아니구요. 네;”
    -준호는 상당히 귀여운 캐릭터입니다. 양말을 벗어 본체에 올려놓는 행동도 귀엽군요.

    지선은 혹시 미모 하나로 모든 것을 설득할 수 있었던 그녀를 모델로 정하고 한건가요?


    혜선이는 안나와요?

    아무튼 재미있어요... 역시 기다린 보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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