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잇굿? since2007

adman.egloos.com

포토로그 마이가든



엔딩크레딧_3회 엔딩크레딧

 

 시나리오가 한지선 팀장의 마음에 들지 못했다는 건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고쳐와야 한다는 얘기였다. 박피디는 지선이 시나리오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걸 눈치채고는 은근슬쩍 대표의 의견을 궁금해했다. 아무리 지선이 시나리오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해도 대표가 오케이해준다면 지선의 의견 따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선은 그런 박피디가 얄미웠다.


 “그런데 대표님은 언제 와요?”

 “아.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회의엔 참석 못한다고 연락주셨습니다.”

 “이번 시나리오에 대해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고?”

 “글쎄요. 별 말씀없으셔서요.”

 “그렇단 말이지. 하여간 한팀장 말은 잘 알겠는데... 그건 아닌 것 같거든?”


 박피디가 은근슬쩍 말을 놓았다. 그도 그럴게 박피디는 지선보다 열 살 가까이 나이가 많았는데 굳이 따져보자면 지선이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영화 일을 시작한 셈이었다. 박피디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자기가 지금 지선과 나란히 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만이었다. 대표와 단 둘이서 다이렉트로 이야기를 나누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선도 박피디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지선이 대표와 함게 있을 때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그렇지 않을 때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박피디는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회의에서는 말하는 것조차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선으로서는 여자라서 무시당한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이럴 때 일수록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건 저만의 의견이 아니거든요. 지난 주에 20대 초반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나리오 모니터 결과 보내드리지 않았나요?”

 “아 그건 봤어. 그런데 영화를 다수결로 만드는 건 아니잖아? 솔직히 걔들이 뭘 안다 그래? 그리고 20대 얘기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 이수영 작가도 몇 년 전까진 20대 초반이었다구. 우리도 그 세대를 모르는 건 아니야.”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로서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네요. 대표님께는 잘 전해드리겠습니다.”

 “에이. 왜 이러실까. 알았어. 알았어. 그 20대 여대생 모니터 결과 반영해서 다시 고쳐오면 되는거지?”


 지선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려고 하자 박피디가 화들짝 놀라며 애써 만류했다. 비록 박피디가 지선보다 나이가 많고 참여한 작품도 많았지만 최근에 참여한 작품들의 흥행 성적만 놓고 본다면 지선보다 한참 아래였다. 지선에게는 얼음 공주라는 별명 말고도 흥행의 여신이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그동안 지선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던 수십여편의 작품 중에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은 단 한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대표도 지선의 의견이라면 백퍼센트 믿고 따르고 있었기에 아무리 박피디가 나이가 많고 참여한 작품의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지선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작품을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선은 대표가 힘들게 영입한 유능한 인재이기도 했다.


 떨떠름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끝나려는데 다들 코를 킁킁 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들 그저 비가 와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냄새는 점점 고약해졌다. 순간 준호는 자신이 맨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회의실에서 나고 있는 고약한 냄새가 자신의 발 냄새라는 확신이 들었고 최대한 빨리 회의실에서 나가야 될 것 같았다.


 “저 약속이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준호는 지선에게 작은 목소리로 양해를 구하고는 허락도 받지 않고 황급히 회의실에서 나가버렸다. 지선은 준호가 회의 중간에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회의실에서 나가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회사가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떻게 맨발로 회의실에 들어올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오타 사건과 함께 단단히 주의를 주어야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잠깐! 오타 때문에 혼내고 양말 안 신었다고 혼내고? 내가 선생이고 준호가 학생이거나 내가 누나고 준호가 동생이라면 모르겠는데 여기는 어디까지나 회사잖아? 오타는 그렇다쳐도 내가 왜 부하 직원 양말 안 신고 다니는 것까지 일일이 신경써야 되는 거지? 지금 여기 회사 맞아?


 지선은 예전부터 준호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건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학벌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경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열정이나 꿈도 없어 보였다. 솔직히 대표님이 무슨 생각으로 준호를 채용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지선 생각에 준호가 내세울 거라곤 남들보다 조금 더 큰 키와 잘 빠진 몸매 그리고 숨 막힐 정도로 잘 생긴 건 아니지만 적당히 매력있는 곱상한 얼굴 뿐이었다. 번듯한 외모만 본다면 그 누구도 준호가 어리버리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지선은 도대체 준호가 뭘 믿고 그렇게 무방비하고 대책없이 회사 생활을 하는 건지 언제 기회가 되면 직접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혹시 집에 돈이 많아서 영화는 취미로 하는 걸까? 재벌 2세라도 되는 거야? 설마 재벌 2세라는 사실을 숨기고 혼자서 <체험 삶의 현장> 촬영 중인 건 아니겠지? 지선이 직접 준호의 가족관계를 확인해 본 적이 없으니 준호가 재벌 2세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평상시에 준호가 하고 다니는 행색이나 행동거지로 보아선 절대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2009/05/20   엔딩크레딧_2회 [6]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adman.egloos.com/tb/2352701 [도움말]

핑백

  • 앤잇굿? : 엔딩크레딧_4회 2009-05-23 01:08:45 #

    ... 화사 직원’이고 자기는 ‘백수나 다름없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아무 소리 못하고 있는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2009/05/21 엔딩크레딧_3회 [12] ... more

덧글

  • 마력덩어리 2009/05/21 01:30 # 답글

    준호 재벌 2세일까요?ㅋㅋㅋ
  • 맨드애 2009/05/21 02:22 # 삭제 답글

    준호가 재벌 2세라니ㅋㅋ
  • 키세츠 2009/05/21 09:28 # 답글

    남들보다 조금 더 큰 키와 잘 빠진 몸매..........헐, 전 여태까지 주인공을 애드맨님에 투영시켜서 보고 있었는데... 이거 점점...
  • 오리지날U 2009/05/21 09:34 # 답글

    준호가 재벌 2세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자 빨리 돈을 거세요~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ㅋ
  • 베리배드씽 2009/05/21 10:38 # 답글

    지선이 준호 좋아할 것 같네요.ㅋㅋ
  • 2009/05/21 13:46 # 삭제 답글

    애드맨님, 준호가 본인이시고 한팀장이 예전에 언급하셨던 미모의 마케팅 팀장 아닌가요 혹시? +_+
  • 두부 2009/05/21 23:12 #

    준호가 본인은 아닌 것 같지만 미모의 마케팅 팀장님은 맞는 것 같아요^^
  • 하양군 2009/05/21 17:10 # 답글

    허당 준호선생'ㅅ'
  • 애드우먼 2009/05/21 19:59 # 삭제 답글

    재밌네요 애드맨님ㅋㅋㅋ빠릿빠릿하게 연재해주세요
  • 두부 2009/05/21 23:12 # 답글

    볼수록 매력적인 준호!
  • 파트맨 2009/05/21 23:19 # 삭제 답글

    '준호가 내세울 거라곤 남들보다 조금 더 큰 키와 잘 빠진 몸매 그리고 숨 막힐 정도로 잘 생긴 건 아니지만 적당히 매력있는 곱상한 얼굴 뿐이었다.'

    애드맨님 워너비? ;;
  • 2009/05/22 03:07 # 답글

    남자는 미모! 미모죠. 미모 뿐이에요.
  • 마력덩어리 2009/05/23 01:21 # 답글

    남자는 미모! 동감입니다.ㅎㅎㅎ
덧글 입력 영역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