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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_7회 엔딩크레딧

 

돈을 빌려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약 5초 정도 고민이 됐지만 이번에는 빌려주고 싶어도 빌려줄 돈이 없었다. 솔직히 돈이 있어도 빌려주기 싫었다. 돈을 빌리려면 최소한 지난 번에 빌려간 돈은 갚은 다음에 빌려달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지난 번은 커녕 지지난 번 지지지난 번에 빌려간 돈도 안 갚은 주제에 또 다시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민석이 얄미웠다. 더 이상 빌려주면 안 될 것 같았다. 사람을 무슨 호구로 아나?


“미안해. 나도 요즘 어려워서 안 되겠다.”

“니가 돈 쓸 데가 어딨다구 어려워?”

“내가 왜 돈 쓸 데가 없어? 글구 내가 돈 쓸 데가 없으면 자기한테 쓰라는 법이라도 있어?”

“혹시 니네 회사도 월급 안 나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요즘 월급 안 나오는 영화사 많잖아. 내가 아는 데만 해도 수두룩하다.”

“자기 걱정이나 하시지?”

“혹시 딴 남자 생긴 건 아니겠지?”

“아 정말 놀고 있으시다. 나 이만 들어갈래.”

“누구야? 어떤 놈인데 그래? 나보다 잘생겼어? 키 커?”


지선은 테이블에 삐딱하게 기대어 앉은 채 실없는 농담이나 찍찍 내뱉고 있는 민석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아까웠고 오늘따라 유난히 민석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가 이제는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진다니...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민석은 그런 지선의 심정도 모르고 눈치없이 졸래 졸래 지선을 따라 카페에서 나왔다.


“야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그냥 가면 어떡해?”


민석이 지선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지선은 민석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민석을 외면한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열 받은 민석이 씩씩거리며 지선을 따라오는데 그들의 앞을 왠 남자 두 명이 막아섰다. 준호와 형준이었다.


“어? 팀장님!”


준호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 지선은 살짝 목례만 하고 계속 가던 길을 갔다. 준호에게 눈물을 보였다는 사실이 쪽팔렸다. 이게 다 민석 때문이다. 이 인간은 도대체 인생이 도움이 안 된다. 뒤에서 끈질기게 따라오던 민석은 지선에게 아는 체를 했던 준호에게 잠깐 시선을 준 후 계속해서 지선을 따라갔다.


“야 한지선! 너 거기 안 서? 사람 무시하는거야?”


민석은 쪽팔리게 길거리에서 고래 고래 소리까지 지르면서 따라왔고 지선은 이런 모습을 부하 직원에게 보였다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워 사무실 쪽으로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준호는 영문을 모른 채 지선이 전력질주하는 뒷모습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지선의 뒷모습이 건물 사이로 사라졌고 그런 지선의 뒤를 따라 달리다 제 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는 민석의 모습이 멀리서 조그맣게 보였다.


“사랑 싸움인가보죠? 아는 분이세요?”

“어? 응. 우리 팀장님.”

“우와. 예쁜데요? 개성파 미인 맞네. 스타일도 좋고 달리기도 잘 하고. 뒤에서 따라가던 남자가 애인인가봐요? 여자가 아깝네요.”

“글쎄.”

“보아하니 남자 쪽이 방금 차인 것 같은데. 팀장님은 몇 살이에요?”


준호는 언제나 냉철하고 깐깐하고 도도하기만 했던 지선의 눈에서 눈물을 목격하고 살짝 흥분된 상태였다. 형준이 지선의 신상에 대해서 꼬치 꼬치 물어왔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쓸데없는데 신경끄고 빨랑 집에 가서 시나리오나 써. 개봉하는 영화들도 좀 챙겨서 보고. 너 극장엔 안 가고 맨날 다운만 받지? 니가 그러니까 점점 감을 잃는 거야.”

“헤헤. 극장에 안 간지 벌써 6개월 넘었어요. 다운 받은 것도 아직 다 안 본 상태라.”

“너 그러다 언젠가 벌 받는다. 나중에 니 영화 개봉했는데 사람들이 극장에서 안 보고 다운만 받아서 보면 기분이 좋겠니? 안 좋겠니?”

“에휴. 그 날이 오긴 올까요? 다운이라도 받아서 봐주면 좋겠네요.”

“알았다. 그건 알아서 하고 난 이제 들어갈게. 조심해서 들어가고 화이팅이다.”

“네 형도 수고하세요.”


꾸벅. 형준은 허리를 굽혀 준호에게 깍듯하게 인사하고 전철역 안으로 들어갔다. 준호는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전철역 안으로 들어가는 형준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준호에게 시나리오를 건네기 직전까지만 해도 혹시나 이번에는 계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레이는 기대감 비슷한 게 있었을 것이다. 준호도 그런 형준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닌 건 아닌 거였다. 일단 '속도위반'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요즘같은 세상에 초반엔 갈등 좀 있다가 결국엔 화해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뭐 그런 뻔하고 고리타분한 얘기를 누가 보겠는가? 그래서 더 형준이 불쌍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차라리 못되고 독한 놈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아무튼 형준도 형준이지만 당장 사무실에 들어가면 지선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냥 모른 척 해야 되나? 아님 오늘 힘드셨죠? 위로의 말을 건네며 퇴근 후에 술이라도 한 잔 사겠다고 해야 되나? 조용히 불러내서 물어볼까? 아님 다른 직원들 몰래 메신저로?


2009/06/21   엔딩크레딧_6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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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다리다지쳐 2009/07/16 03:47 # 삭제 답글

    월간 엔딩크레딧 7월호 업댓 축하요.
  • 아는남자 2009/07/16 07:09 # 답글

    엔딩크레딧 7월호...???ㅎㅎㅎ
    민석...참 얼굴도 두껍습니다... 윽윽윽
  • elk 2009/07/16 14:58 # 삭제 답글

  • 키세츠 2009/07/17 09:45 # 답글

    월간연재였군요;;;

    전개가 점점 마음에 듭니다. 중간에 "키커?"에서 이미 준호를 떠올린 1人
  • 베리배드씽 2009/07/17 14:02 # 답글

    문득 민석이와 형준이가 엮일까. 궁금해지네요.
  • 부두키스 2009/09/02 06:47 # 답글

    이게 마지막인가요?
  • 애드맨 2009/09/02 21:26 #

    현재 연재중입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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