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롯데엔터테인먼트가 CJ엔터테인먼트나 쇼박스에 비해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길래 롯데엔터테인먼트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아서 무비위크의 롯데엔터테인먼트 특집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았다. 다들 열심히 일한다는데 그건 당연한 거고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최건용 상무이사의 인터뷰 중 <영화 투자, 배급 사업을 시작한 2004년에는 롯데 내부 직원이 아닌 충무로에서 1~2년 혹은 3~4년 경력을 쌓은 친구들을 데리고 왔었는데 “어떻게 투자배급사가 제작사에 제작 진행과 관련해 간섭할 수 있느냐”며 말을 안 듣길래 (원문 : 갈등이 좀 있었다) 2005년부터는 롯데 내부 직원들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부분이었다. 그 이유로는 “영화 사업이라는 건 ‘내가 안다’고 생각할 때부터 위험해지는 거다.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관객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영화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그게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만 하고 말도 잘 안 듣는 충무로 인력들보다는 영화 산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지만 말은 잘 듣는 대기업 내부 직원들을 기초부터 다시 가르켜서 써먹는 게 훨씬 낫다는 얘기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건 다 떠나서 대기업 내부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쌓아온 장점은 분명히 있을 것 같다.
문득 예전에 주변 아무개들과 <충무로 출신 인력들 vs. 대기업 내부 직원들> 중 누가 더 영화를 잘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벌인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충무로 출신 인력들의 손을 들어준 아무개들의 논거로는 영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잘 알아야 되는데 취업 준비만 열심히 했을 게 뻔한 대기업 내부 직원들이 현장에 대해 뭘 알겠냐가 있었고 대기업 내부 직원들의 손을 들어준 아무개들의 논거로는 현장을 잘 알고 자시고를 떠나서 영화를 잘 하려면 일단 영화를 많이 겪어야 하는데 충무로 출신 인력들은 영화를 많이 겪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영화 산업에서의 현장이 제작 현장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었고 현장을 잘 안다고 영화를 잘 하는 건 아니라는 주장에도 동의했지만 꿈 하나만 믿고 춥고 배고프게 살아온 충무로 출신 인력들이 상대적으로 잘 먹고 잘 살아왔고 아쉬울 것도 없을 대기업 직원들보다 영화 실력마저 뒤처진다면 그 춥고 배고팠던 긴 세월을 어디에서 보상받나 싶은 측은지심에 나도 모르게 충무로 출신 인력들의 손을 들어줬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확실히 영화를 잘 하려면 대기업 내부 직원으로 전략적으로 키움을 받는 쪽이 유리하다 싶다.
어차피 천재는 없다는 가정 하에 충무로에서 오래 버티고 현장을 잘 안다고 영화 흥행의 비밀에 대해 정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줄을 엄청나게 잘 서서 누군가 작정하고 키워주지 않는다면 꾸준히 일자리를 얻기조차 힘든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작 스태프의 경우 1년에 2~3편 이상 영화 일을 하게 되면 무슨 경사라도 난 것처럼 일자리를 얻지 못한 주변 아무개들에게 술을 사야 되는 분위기지만 대기업 내부 직원 신분으로 영화 일을 한다면 굳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뛰어다니지 않아도 일 년에 수십편을 겪을 텐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격차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하다. 언뜻 생각하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달랑 서너편 경험하고 다음 일자리를 찾기 위한 고군분투만을 거듭해온 충무로 출신 인력과 재능은 별로 없더라도 수십여편을 경험하며 데이터를 축적해온 대기업 내부 직원 중 누가 더 영화를 잘 할 것인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그래서 2005년부터 기업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키워왔다는 롯데 내부 직원들의 흥행 성적을 살펴보았다. <과속스캔들>, <7급공무원>은 성공, <우리 집에 왜 왔니>, <여고괴담5>은 실패. <차우>는 현재 진행 중이니 평가 보류. 누가 봐도 <과속스캔들>과 <7급공무원>을 발굴한 선구안은 대단하다 싶겠지만 <우리 집에 왜 왔니>와 <여고괴담5>에 와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포스팅 하단에 첨부한 관련포스팅을 보면 알겠지만 선구안만 놓고 본다면 나는 <과속스캔들>과 <7급공무원>은 잘 될 거라고 예상했었고 <우리집은왜왔니>와 <여고괴담5>는 안 될 거라고 예상했었으니 천하의 롯데 엔터테인먼트가 일개 블로거인 애드맨보다도 선구안이 뒤떨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하고 싶다고 아무 작품이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라인업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작품도 있을테니 선구안이 롯데 엔터테인먼트만의 특별한 점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더>가 잘 안 될 줄 알고 안 했겠는가.
최건용 상무 이사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2,000명의 온라인 패널을 비롯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기획회의 때 제시하고 무엇보다 모니터링 시사회를 한 영화당 스무 번 넘게 하고 ‘중점 관리 시트’라는 것도 만들고 시나리오, 프리프로덕션, 슈팅에 들어가기까지, 단계별로 우리가 왜 투자를 했는지 디테일하게 분석하면서 영화를 함께 만들어 가는 비중이 높다는데 그래서 나온 흥행 성적치고는 이렇다 할 차별점이 없는 것 같다.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와 제작사와의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그런 식의 관리 방식은 명필름이 한국 최고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명필름의 흥행 성공률이 높은 편도 아니었다. 특히 <차우>의 경우는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니 “캐릭터의 모습은 애초 시나리오에는 없던 부분이고, 촬영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더 많다보니 완성된 영화를 보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고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정해진 시나리오를 넘어 현장에서 배우들과 즉흥적인 교감을 통해 만들어낸 장면이 많았다.”하는데 그렇다면 ‘중점 관리 시트’는 뭘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생각엔 그동안 충무로 인력들이 영화에 대해 잘 아는 척 한 것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순순이 인정하고 일을 시작한 대기업 직원들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것 뿐이지 알고 보면 충무로 인력들이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것 만큼이나 대기업 직원과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도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수백여편의 흥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더 많은 시사회 관객들에게 발품을 팔면서 꼬치 꼬치 캐묻는다고 영화를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블로거나 영화과 강사나 교수나 평론가나 영화 기자들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흥행의 신은 평등한 것이다.
여러 모로 살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특별한 점은 2004년에 첫 배급을 시작한 이후 5년 내내 돈을 잃었으면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뚝심 하나인 것 같다. 그 뚝심이 한국 영화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5년 내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한국 영화를 계속 했다는 사실이다. 주식투자를 하는데 5년 내내 투자하는 종목마다 마이너스였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는가. 90년대 중반에 영화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IMF를 맞이하며 일제히 발을 뺐던 삼성영상사업단, 대우영상사업단, 금강기획 등의 경우를 생각하면 5년 내내 돈을 잃었으면서도 버텨왔다는 뚝심 하나만으로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특별하다. 씨네21 문석의 영화 판.판.판.에 따르면 다른 배급사 관계자는 “한때 롯데의 상층부에서 영화 부문의 사업성 자체를 재검토했던 것으로 안다”는데 5년 내내 돈을 잃었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노하우가 궁금하다.
관련기사
[문석의 영화 판.판.판] 롯데야 ‘자이언트’가 되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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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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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mio 2009/07/21 10:39 # 답글
안그래도 저도 이 기사가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뭔가 행간에 들어간 배경, 여러 상황 과 한편으로는 대기업에서 어떠한 관리방식에 대한 자부심. 영화판에 대한 방식등이 미묘하게 섞여서 .. 그나저나 결론은 " 생각엔 그동안 충무로 인력들이 영화에 대해 잘 아는 척 한 것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순순이 인정하고 일을 시작한 대기업 직원들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것 뿐이지" 일거 같네요. 저는 읽으면서 이거 말이 많았을까 업계에서는 머라고들 이야기했을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써주시니 정말 역시 그랫구나 싶어요.
오리지날U 2009/07/21 10:54 # 답글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건 '데이터 장사'가 아니라 생각해서.. 뭐 이런 건.. ㅎ
지나가당 2009/07/21 11:52 # 삭제 답글
애드맨님이 일개 블로거는 아니죠?
numa 2009/07/21 14:54 # 답글
롯데 엔터테인먼트에서 주로 투자하는 작품들을 보면, 작품성이나 흥행성을 떠나서 일단 캐스팅이 좀 중견 이상의 안정적인 배우들에게 몰려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감독도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인데 감독은 제가 잘 모르니 패스-_-; 따라서 신인 배우나 신인 감독에게 파격적인 권한을 주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구요, 그것이 아마도 대기업 출신 직원들의 리스크 매니징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충무로에 계신 분들보다는 조직 내에서 일한 경험이 더 많으니, 일단 규모가 커지게 되면 효율도 더 늘어날 것이구요...초대박 유무보다도 손익분기 넘지 못한 아주 망한 작품만 없으면 기업으로서는 OK니까요...
JK 2009/07/21 18:49 # 답글
충무로인력의 똥고집에 화가나신 이사님은 앞으로는 충무로 인력을 뽑지 않을 터이니 애드맨님이 롯데시네마에 이력서를 보내는 일은 없겠네요...
jj 2009/07/22 02:03 # 삭제 답글
노하우는 결국 돈 아니겠습니까.막강한 재력! 한번 정하면 쉽게 바꿀 수 없는 대기업 특유의 구조!
mario 2009/07/24 19:43 # 삭제 답글
<과속스캔들>과 <7급공무원>의 공통점은 디씨지플러스네요. <불신지옥>은 쇼박스가 배급해도 기대됩니다. 롯데가 자체적으로 키웠다는 직원들의 능력과는 별 상관 없어 보이는군요.
wlq8995 2009/07/25 15:40 # 삭제 답글
뚝심이네~~사람들은롯데를욕한다할지라도대우나삼성은돈이없어영상사업을접었나??/
Alistasha 2009/07/31 11:15 # 삭제 답글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ㅋㅋ현재 영화홍보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예전에는 단순히 영화만 좋아 했다면 요즘은 산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이러한 부분들도 궁금했었는데... 흥미롭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