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해운대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 과연 윤제균은 얼마를 벌었는지 계산해보고는 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에 비해 수익이 너무 적은 것 같아 안타까워했던 적이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리 안타까워 할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해운대는 역대 천만 영화 중 가장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게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게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건 영화 자체의 힘보다는 영화 외적인 힘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얘긴데 그 영화 외적인 힘이 뭐였는지를 생각해보면 극장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의 극장 관객 수가 일주일에 평균 300만 정도 되니까 짧게는 한달 길게는 두달 정도만 특정 영화에 관객을 몰아주면 천만 관객도 꿈의 스코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영화에 관객을 몰아주는 게 가능하다면 그걸 가능하게 한 쪽에서 그만큼 지분을 가져가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언젠가부터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게 아니라 극장 체험을 하기 위해 영화를 고르는 분위기가 자리잡았으므로 보다 많은 관객들의 최대 공약수만 충족시킬 수 있다면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졌다.
해운대 리뷰를 보다보면 이게 왜 천만 영환지 모르겠다는 리뷰를 자주 볼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한 영화를 천만명이나 봤는데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할 수가 있는 건지 궁금했었는데 이게 바로 해운대가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게 천만 영화일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제리 브룩 하이머가 “우리는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리는 한 극장에서 다른 극장으로 관객들을 이동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영화제작업’을 정의한 적이 있는데 해운대 천만 돌파는 멀티플렉스의 증가 등 극장 환경의 변화에 따른 한국 영화업계의 운송업적인 측면이 극대화된 현상인 것이다. 해운대가 조용한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이 버스나 택시 서비스에 대해서 딱히 할 말이 없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제균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도 설명이 된다. 아마 극장 환경의 지각변동이 없는 이상 앞으로도 크리에이터 쪽의 지분이 지금보다 늘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이건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자연환경의 변화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심재명 MK픽처스 대표는 최근의 탈이데올로기, 탈사회, 탈이슈를 내건 이른바 '3탈(脫) 영화'들의 인기에 대해 "대형 흥행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세대가 달라졌고 흥행을 이끄는 관객층도 바뀌었다"며 "대중영화의 인기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고 주장했는데 내 생각엔 세대에 따른 감독이나 관객층의 변화보다는 극장 환경의 변화 때문인 것 같다. 멀티플렉스는 시네마테크가 아니다. 특정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는 게 아니라 극장 체험을 하기 위해 영화를 고르는 관객들의 최대 공약수를 찾다보면 결국엔 에찌;;없이 두루뭉실한 '3탈(脫) 영화'가 정답일 수 밖에 없다. 88년도쯤에 유행했던 <내 인생의 영화 베스트10> 찾기 놀이 같은 건 점점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쯤 젊고 패기있고 똑똑한 PD들이 한국영화를 이끌었던 시대가 있었고 이후 브랜드 감독들과 스타 배우들이 번갈아가며 아주 잠깐씩 한국 영화를 이끌었었는데 이제는 극장의 시대가 온 것 같다. <괴물> 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었는데 <해운대>의 경우를 보아하니 더 이상 긴가민가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게다가 극장이 투자까지 겸하고 있는 마당에 초창기의 우리는 영화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 알아서 잘만 만들어주세요 라는 분위기에서 최근엔 어차피 흥행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관객들(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라면 우리도 니들만큼은 안다는 분위기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아주 잠깐이었던 PD나 감독 또는 스타 배우들의 시대와는 달리 극장의 시대는 매우 오래갈 것이다. 당연히 극장 환경의 변화에 따른 영화 지분 구조의 변화가 없는 이상 해운대 한 편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투자가 활성화 될 리도 없다. 영화 잡지와 영화 얘기 또는 영화 블로그들이 시들해진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극장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PD나 감독 또는 배우들과는 달리 극장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쩐주의 투자 성향이나 극장별 매점의 콜라나 팝콘 맛을 작가주의의 잣대로 리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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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00 2009/09/07 00:26 # 삭제 답글
asd
키린 2009/09/07 00:32 # 답글
1~2년전만 하더라도 한국영화가 망할 수도 있다고 블라블라 했던게 엊그제같은데..
00 2009/09/07 00:34 # 삭제 답글
극장의 힘이 영화의 힘을 초월해서 천만관객을 만들었다는 의미의 내용이 단박에 이해가 오질 않는데,이것이 말인즉 영화의 흥행은 그것이 잘났고 못났고가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극장을 찾은 인간 머릿수가 많음에 덩달아 영화가 잘 나간 것이라는 뜻인가.
.. 2009/09/07 01:11 # 삭제
극장을 즐기러 온 것이지, 영화를 즐기러 온 것은 아니란 얘기.
하고픔 2009/09/07 02:23 #
정말 이말 공감가요 영화를 즐기러 온개 아니라 그냥 극장문화를 즐기러 온다고 해야되나 친구 만났는데 할건 없고 영화나 보자고 하면 그냥 대충 볼만한 영화 고르다가 보는 거라고 해야되나 ㅎㅎ;
00 2009/09/07 07:10 # 삭제
그러니까 예를 들면 앉아서 놀려고 스타벅스에 간 것이지 커피 마시려고 간게 아닌거랑 같은 거구나
왕맨 2009/09/07 07:48 # 삭제
그러니까 앉아서 놀려고 스타벅스에 갔는데 메뉴판에 아메리카노 하나만 있는 거랑 같은 거죠. 아메리카노 천만잔ㅋ 못 팔까요?
PTSD 2009/09/07 00:34 # 답글
극장을 찾은 사람들의 수보다 배급사 파워에 따라 몰려가듯 본 사람의 수가 많다는 이야기겠죠.+스크린 확보 자체가 많은 편 아니었나요. 해운대는.
.. 2009/09/07 00:47 # 삭제 답글
이건 일종의 영화유물론인데..
2009/09/07 01:0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arthy 2009/09/07 01:02 # 답글
하긴 천만 넘은 것 치곤 너무 조용한데다가, 영화 자체의 파워가 지나치게 달린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결국에는, 극장에서 많이 걸어주고 장기적으로 끌고 가면, 수준 이하의 영화만 아니라면 일정 이상의 관객은 들어오게 되어있다는 걸까요.
ㅠㅠ 2009/09/07 01:11 # 삭제 답글
게임계의 아타리 파동이 생각나네요.
.. 2009/09/07 01:26 # 삭제
알타리무 쇼크. 자취를 많이 하던 당시 개발자들이 알타리무 가격이 급등하자 밥을 제대로 못 먹어 그 해 게임의 퀄리티가 급속하게 떨어졌다는...
오리지날U 2009/09/07 09:21 # 답글
대부분 맞는 말씀이십니다. 이제 '배급장난'이 관객들로부터 합법화? 되는 시대가 온 거죠.
키세츠 2009/09/07 09:43 # 답글
The Power of 쩐
파벨 2009/09/07 11:19 # 답글
정말 공감합니다. 전 영화부터 선택하고 극장에 가는 편인데몇 주째 M관에 해운대 였는지 진짜..;
구라왕국 2009/09/07 13:00 # 답글
애드맨님 간만에 좋은 포스팅!!!
김현주 2009/09/07 17:57 # 삭제 답글
공감 합니다~
언논 2009/09/07 18:03 # 답글
그러고보니 저도 다른 영화는 저 혼자 그냥 조조로 보러 갔지만 해운대는 가족과 함께봤군요.이 포스팅을 보니 영화관들이 과거와 다르게 쇼핑몰이나 백화점건물 내에 위치하고 상당수의 극장의 아래층에 음식점이 들어가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qanik 2009/09/08 01:37 # 답글
옳으신 말씀.자본의 힘이 영화를 파괴하는 중이죠.
ㅇㅇ 2009/09/09 19:49 # 삭제
자본 없으면 영화도 없음요. 90년대 이전 한국 영화는 자본에 구애 안 받았는데 왜 그 모양?
qanik 2009/09/10 04:18 # 답글
진심으로 물어보시는 건지...좀 헷갈려서 대답하기가...
몰상식 2009/09/14 13:39 # 삭제 답글
영화업에 종사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기엔... '극장'이나 '배급사'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듯 하군요.'극장'이나 '배급사'가 100만 들 영화를 150만을 만들 수야 있지만 500만 들 영화를 1000만을 들게 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해운대'가 지난 천만 영화들과 다른 점은... 정말 끝내주는 웰메이드 영화는 아니지만 딱히 재미없다고 입에 거품 물 영화는 아니고(상업적으로 그 정도면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재미와 감동은 적절해 보이는 반면... 개봉전부터 목소리 큰 '안티'들(그것도 설배우의 사샐활을 트집잡는 안티들)이 많았어서 그렇게 보이는게 아닐까 싶네요. 전 세계에서 영화산업이 가장 발달한 헐리우드의 제작자나 PD나 감독들도... 극장의 시대를 얘기하며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졌다"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영화가 산업화 되어 갈수록 그리고 멀티플렉스와 와이드개봉이 늘어날수록 '극장'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이미 커져있지만 그 사실이 PD나 감독 그리고 제작자들의 푸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엘 2009/09/15 02:01 # 답글
와와 애드맨 멋진 포스트 감사합니다. 글도 잘 정돈되어 있고, 이해도 쉽네요. ^ㅅ^ 구구절절 맞네 맞아 하면서 봤어요. ^^
마력덩어리 2009/11/12 19:01 # 답글
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