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셨다. 애초에 아무 이유 없는 술자리였고 모두들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서인지 이야기 꺼리가 금방 떨어져버렸다. 집에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하는 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얼굴 안 본 지 오래 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금 퇴근 했다면서 술자리에 자기네 회사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올 테니 기대하라고 했다. 친구가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하자 축 쳐져 있던 술자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얼마 뒤 친구가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왔다. 술에 취해서였을까? 다들 예뻐 보였다. 친구가 데려온 신입사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애교가 잔뜩 섞인 자기 소개를 했고 술자리는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술집에서 나와 2차를 가려고 했는데 신입사원들이 노래방에 가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신입사원들은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대략 30여분 가량을 자기들끼리 논스톱으로 최신가요를 불러댔다. 우리는 유치원 재롱잔치 구경 온 동네 아저씨들처럼 다들 자리에 앉은 채로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열심히 박수만 쳐주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위문 공연을 해 주는 것 같아 마냥 고마웠다. 그런데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나자 신입사원들은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철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며 다음에 봐요 라는 말만 남기고 노래방에서 나가버렸다. 노래방 타임은 아직 1시간 30분 가량이 남아 있었다. 당혹스러웠다. 우리 중에선 딱히 노래를 즐겨 부르는 친구는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끼리 노래방에 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각자 평소에 부르고 싶었던 노래나 실컷 불러보자고 합의한 후 각자 알아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분명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지만 박수도 없고 호응도 없는 기묘한 분위기였다. 노래 한 곡이 끝나도 다음에 예약된 노래가 없어서 자주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꾸역 꾸역 1시간 30분을 채웠는데 사장님이 추가로 또 30분을 넣어주셨다. 그닥 고맙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또 그렇게 30분 동안 최신가요 이것 저것 들을 시험 삼아 불러보았다. 다 좋은데 랩부문이 참으로 고역이었다. 씁쓸함을 잔뜩 머금고 노래방에서 나와보니 다행히도 아직은 전철이 다니는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딱히 씁쓸할 것도 없는데 왜 이다지도 씁쓸한 걸까. 날이 추워서였을까?
- 2009/11/0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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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수 : 8
태그 : 망해가는영화사직원의비공식업무일지, 씁쓸한술자리




덧글
파트맨 2009/11/02 01:28 # 삭제 답글
씁쓸하네요...극사실주의 ;;
ㅁㅁㅁ 2009/11/02 02:12 # 삭제 답글
홍상수 영화를 보는듯한 일기네요...ㅠㅠ
daewonyoon 2009/11/02 08:17 # 답글
아주 재밌네요.
오리지날U 2009/11/02 13:00 # 답글
이건 머 그냥 비극이네요, 비극 ㅜ
44 2009/11/02 14:19 # 삭제 답글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네.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네
마력덩어리 2009/11/02 15:40 # 답글
다큐ㅎㅎㅎ
muu 2009/11/02 21:08 # 삭제 답글
감독은 홍상수, 배우는 김상경이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베리배드씽 2009/11/04 02:19 # 답글
신입사원에서 반전이 있을 줄 알았는데 ㅋㅋ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