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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추운 겨울 비공식업무일지


이번 겨울은 추울 것 같다.


먹튀사고 책임지라던 소개녀에게 사과의 의미로 술을 사며 이번 겨울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만들어줄 남자를 반드시 소개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보너스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과 지난 번처럼 남자에게 너무 빨리 해피타임을 허락하면 안되는 이유를 차근 차근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주던 중 겨울이 되면 당장 내가 추위에 떨게 생겼는데 지금 상처받은 소개녀 위로해주고 있을 땐가 싶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작년 겨울 생각이 났다.


작년 겨울엔 영화하는 사람들 두명 이상만 모이면 내년 영화판이 힘들어질거란 얘기를 나누었다. 힘들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빙하기처럼 투자사의 돈줄이 얼어붙고 몸집만 거대한 공룡같은 영화사들은 곧 망할 것이며 돈 좀 있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든 사업주들은 다 짐 싸서 떠날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농담 반 진담 반처럼 나누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나자 우려는 거짓말처럼 하나도 빼놓지 않고 현실이 되었다.


작년엔 비록 열편 개봉하면 아홉편이 망하는 와중에도 이번에는 망했지만 다음 번에 잘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막연한 희망이었다.


그래서일까? 세상의 중요한 일들은 언제나 토크 플레이 러브의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요즘 내가 알고 있던 영화사들은 망해가거나 이미 망해버린의 두가지로 구성되는 것 같은데 내가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이기 때문이라서 그런가보다. 물론 잘 나가는 영화사도 있겠지. 요즘엔 영화사 Z.이 잘나간다고 하더라.


현실적인 고민을 하다 보니 술맛이 뚝 떨어져 술을 더 마시고 싶어하는 소개녀를 억지로 집에 보내고 (집에 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들어가기 허전해 오뎅과 떡볶이를 먹으러 전철역 앞 이동트럭 포장마차로 향했다. 멀리서 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장마차 앞에서 오뎅 꼬치를 들고 고개를 쭉 뺀채 열심히 오뎅을 먹고 있는 검정색 이스트팩 가방을 매고 있는 아저씨가 눈에 익었다. 바로 예전에 함께 일했던 흥행 참패한 영화의 감독님이었다. 함께 일했던 작품의 흥행 참패 이후 몇 년 후에 만든 차기작도 흥챙 참패하신 감독님이시다.


한국의 길거리 음식 문화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감독님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맛있게 오뎅을 먹고 있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힘들고 어려우면 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감독님을 알아보자마자 고개를 돌려 바로 전철역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감독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는 척 하려다가 감독님 요즘 경제 사정도 안 좋을 텐데 떡볶이랑 오뎅 좀 사달라 그러기가 미안해서 그냥 모른척해버렸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감독님이 아닐 수도 있다. 멀리서 보면 아저씨들은 대충 비슷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아무리 감독님이 1년 365일 매고 다니던 검정색 이스트팩 가방을 매고 있었다지만 이스트팩 가방을 소유한 아저씨가 한두명은 아닐테니 내가 잘못 봤을 가능성이 1%는 될 것이다.


감독님도 이번 겨울은 추울 것이다.




덧글

  • 이적 2007/10/20 10:44 # 답글

    소개녀에게 자신을 소개시켜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가까이 있는 여성일수록 안티섹시필드가 쳐지긴 하지만 뭐... 그정도야.
  • 애드맨 2007/10/20 11:19 # 답글

    안티섹시필드는 없는데 제 스탈이 아니라서요.
  • reina 2007/10/20 12:32 # 답글

    뭔가 마음이 짠- 하네요. ...;;
  • 오사쯔 2007/10/22 11:30 # 삭제 답글

    저도 아저씨라 남일같지 않네요...
  • 지나가는 2007/11/21 16:58 # 삭제 답글

    지나가는 눈팅족입니다...
    3개 글 모두 읽었는데요
    정말 그 남자는 무개념에 몰상식 자체네요
    그런 남자 이름공개를 확! ... 쩝
    근데 글 재밌네요 ㅎ 잘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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